5월의 책_ 아무튼, 떡볶이(요조)

2021. 6. 16. 01:39READING/BOOK

 

 

 

 

나는 나의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을 서운해 말아요. 보이는 것에 흡족하지도 말아요.
언제나 다시 해야 할 시작이에요.

 

 

정말 한 호흡에 읽어내려가버린 책. 한 번에 읽었다는 게 아니라 읽을 때 마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는데 그 흐름을 타고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뭘 하다가도 얼른 침대에 뛰어들어 자꾸 책을 읽고 싶었다. 엄청난 블록버스도 아닌데 왜 계속 땡기지? 맛깔난 고추장 양념이 똑똑 떨어져서 한 방울씩 똑 똑 받아먹으며 읽고있는 것만 같은 책. 아 맛있었다. 책을 읽고 난 감상이 요게 맞는건가? 아무튼 요조씨의 섬세하고 수줍은 성품과 여러 떡볶이를 만나며 마주쳤던 사람들, 떡볶이로 인해 얽히게 된 장소, 인연이 적절히 버무려진 맛있는 떡볶이 세트같은 책이었다. 힐링이라는 말이 붙기 딱 좋아. 

 

 

책을 읽으며 좋았던, 와 닿아 어느 담벼락에는 꼭 적어두고 싶었던 문장을 모아봤다. 나와 닮은 문장들! 

 

 

 

 

모든 것이 나 혼자 가만히 앉아 보기에 좋은 분량의 풍경들이었다. 

 

홀로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홀로 책방에서 시집을 고를때, 혹은 홀로 술집에서 생맥주 혹은 싱글몰트 따위를 홀짝일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분위기' 하나를 같이 먹는다. 그 '분위기'를 먹으면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이라는 것을 하거나 혹은 그 어떤 생각도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그러고나면 우리는 어찌 됐든 결국 더욱 자신다움으로 단단해진 채 거리로 나오게 된다. 그런 경험이 과연 떡볶이집에서도 가능할까. 나는 옛날 조그맣던 '미미네 떡볶이'에서 유일하게 경험해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못하고 있다. 

 

분위기도 먹는 거야. 암암

 

 

이렇게 작은 인간의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을 보면서 나는 귀여움의 공포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진짜 무서운 것은 귀여움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악마가 시커멓고 꼬리가 길고 눈알이 빨갛고 이빨이 뾰족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직 안전한 것이다. 제하 같은 애가 악마였다면 세상은 진즉에 끝났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아직 세상이 안전했던 이유는

슈퍼맨이나 어벤저스 덕분이 아니라구아니였다구.

 

 

주스를 마시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방금 얼마나 맛있는 것을 휘몰아치듯 먹었는지 생각한다. 배 깊은 곳에 그 맛있는 것이 기분 좋게 차착 들어차 있다. 나는 적재감을 실감하며 묵직해진 움직임으로 소파에서 내려와 아주머니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온다. 

 

휘몰아치며 먹지 않기. 휩쓸려 먹지 않기. 늘 실천하고픈 자세

 

 

신수진도 이 건강한 탄산 같은 에너지에 동화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정말 좋아한다 탄산 같은 에너지란 분위기

 

 

처음먹어보는 물회는 물냉면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많이 남겼지만 아주 잘 먹었다는 기분으로 충만했던 식사였다. 

 

아무리 크게 웃어도 소음 속에 웃음이 묻혀서 나는 완전히 안심하고 목이 쉴 지경으로 웃었다. 우리는 괴물처럼 먹고선 소녀 같은 얼굴로 나왔다. 

 

해운대 앞에 '원조전복죽집'있어요. 그거 꼭 드세요!

 

근데 이 이름을 가진 곳이 여기 하나이려나? 

하고 검색해보니까 최근 어떤 일로 인해 별점 테러를 받았다..!

언젠가 들러봐야지 

 

 

'여기 말고 다른 곳에 갈 걸 그랬나'하고 잠깐 후회를 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가 그곳에 간 것에 내 의지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인력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종로적 인간이기 때문에 무슨 일만 있으면 종로부터 찾는 버릇이 있다. 병원에 갈 때도 서점에 갈 때도 미팅을 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도 늘 종로, 종로를 찾는다. 

 

'종로적 인간'이란 표현이 너무 반짝반짝 귀여워서. 

 

고민도 없이 늘 종각 쪽으로만 움직여왔단 걸 한 달 만에 깨달았고 오늘은 일부러 반대편으로 걸었다. 불편해서 좋았다. 

 

불편해서 좋았다니. 최강자다

 

뭔가 신선한 야채를 써는 소리였다. 파일까? 양파일지도 몰랐다. 서걱, 서걱, 서걱. 가슴이 뛸 만큼 좋은 소리였다. 

 

꽃나무가 주는 향기를 맡는 일은 나에게 간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꽃나무는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서 향을 더 나눠주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떤 때에는 바로 곁을 지나도 아무냄새도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제법 멀리 떨어져있어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나무의 컨디션과, 그날의 바람과 온도,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의 내 호흡이 맞아 떨어지는 아주 찰나에 좌우된다. 길을 걷다가 꽃나무 향기를 맡는 것도 나에게는 큰 횡재인 것이다.

 

마지막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유지혜 작가님이 떠오르는 표현이어서 보고파졌다. 

밖에서 마시는 공기 공짜, 걷는 풍경 공짜, 오늘 하루 공짜.

사실 가장 비싼 것들이 무료이다 이 세상은 

 

그러나 충격은 은은하고 집요했다.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마음 생김새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었다. 

이토록 넓고 세심하다니 약간 처음 보는 차원의 마음이어서

 

그때마다 이때 맛보았던 떡볶이를 이야기한다. 대체 맛이 어땠길래 그 정도냐며 묘사를 요구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 맛을 묘사하려고 뇌주름에 힘을 꽉 주고 노력해보지만 이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모호해지고 휘말리는 느낌이 든다.

 

이 지면을 빌어 그 떡볶이 집을 아는 사람의 제보를 기다린다. 간판도 없이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팔았던 그 가게를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아마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왈칵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가 우스워 바로 푸 하고 웃을 것이다. 나는 '울다가 웃는 순간'들을 무척 좋아한다.

 

나도 울다 웃는 순간들을 참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냥 우는 것 자체도 웃는 것 자체도 좋아한다. 

 

포졸들, 관직을 맡은 자들, 죄인들의 모형이 이곳에서 가짜로 생활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어설퍼서 다행이었다. 너무 실제 같았다면 나는 좀 많이 슬퍼졌을 것이다. 이 집들과 인형들의 분명한 조악함이 내가 슬픔에 몰입하는 과정을 막아주었다. 어쩌면 이곳은 애초에 약간 어설프고 촌스러운 풍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며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들이 너무 싶이 슬퍼지지 않도록 말이다. 

 

sooooo cute! 

 

토마토떡볶이는 버섯야채떡볶이보다 훨씬 맛있었다. 왜였을까. 토마토가 가진 특유의 감칠맛이 떡볶이를 더 맛있게 한 것일까. 나는 혼자가 아닌 셋이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예상하고 있다. O가 나에게 '토마토랑 떡이랑 같이 먹어봐, 짱 맛있어.'라고 말해주었기 떄문에. P가 '몽당몽당한 떡이 너무 말랑하고 쫀득해서 정말 맛있다'라며 의태어를 막 남발했기 때문에. 떡볶이 안에 있던 큼직하고 매운 고추 조각들이 얼핏 할라피뇨로 보여서 맞는지 일일이 먹어볼 때마다 O와 P가 나를 묘기 부리는 서커스단원 보듯 하면서 '오오오' 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기어이 밥까지 볶아 먹으며 맡은 임무를 끝까지 마쳤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떡볶이가 맛있었나 보다고. 

 

'신수진 은근 착하지 않냐,'란 질문은 김상희의 리트머스 멘트였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놀아주지 않았다.

 

나도 나의 리트머스 질문 같은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더니 음 명확히 그런 것 보다는

어떤 취향으로 그 사람을 다 판단했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 듯 하다.

좋아하는 유튜버나 영화, 음악 스타일을 듣곤 아~ 그렇구나~(나랑은 안 맞아)

하고 혼자 점점 멀어짐ㅋㄱㅋㄱㅋ

 

나에게 그 아이가 한 일련의 일들은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다 귀여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헬로키티 같은거나 귀여운 줄 알았지 인간의 아이러니하고 복잡한 귀여움에는 미처 눈을 뜨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김상희의 귀여움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나를 따돌리는데도 왜 쟤가 밉지 않을까'라고만 생각했다. 

 

보통 깡이 아님. 따돌려지면 벌벌 떨 때인데 .. .

 

조금씩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궤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대화는 겉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각 다른 문제들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문제에는 헛발질을 했다. 

 

지금까지 살며 섭취한 나의 끼니들이 나를 이루는 지분이 될 수 있다면 아마 '영스넥'의 떡볶이는 첫 번째 엄마의 밥, 두 번째 내가 차려 먹은 밥에 이어 세 번째 영역을 차지할 것이다. 또 김상희라는 사람을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각별한 친구로 매듭지어준 곳이기도 하다. 

 

다른 것 모두 달라도 음식취향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친구. 

나에겐 왠지.. 불가능이야 혼자먹고만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이 집의 맛의 비밀은 고개를 돌리고 있을 작정이다. 나 스스로 흉내내보려는 일체의 엄두를 내지 않을 것이다. 나와 김상희의 이십년은 '영스넥'이란 떡볶이 맛의 신비 덕분에 가능해진 현실이었다. 만약 내가 이 맛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집에서도 이 떡볶이와 비슷한 맛을 낼 줄 알게 된다면, 내 이십년의 현실이 어쩐지 무참하게 시시해질 것만 같다. 

 

삶이 힘들면 사람이 거칠어져. 우리 집이 그렇게 편안한 가정이 아니라 애들 아빠하고 따로 살거든. 

 

이거 참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자신의 마음은 상황보다는 스스로 갈고닦기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해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테이블 위에 시선을 뜻 없이 두고 있는데, 예전엔 보지 못했던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느 건물 지하의 오래된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떤 어른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다시 찾아 먹으며 자신을 닮은 자식을 품고 조용히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작은 가게에서 얼마나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고 있는지 김경숙씨는 알고 있을까. 

 

나의 생계를 위한 공간이 

알 수 없는 많은 이들에게 어떤 저런, 이런 추억을 지닌 장소가 된다면.

의미집착공인 나는 너무 기쁠 것 같아 근데 책임감은 그다지여서 장사는 아니돼 카하 

 

떡볶이 중 사이즈, 솜사탕고로케, 달콤튀김무침, 덴마크 콘치즈가 오늘 우리가 함께 먹을 감미로운 기념들이었다. 

 

감미로운 이 문장.. .

 

충분히 끓은 떡볶이를 먹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다감한 맛에 놀랐다. 맵고 짠, 자극적인 맛일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언제나 쪼그려 앉아 화초를 들여다보는 우리 체육관 관장님 같은 맛이네, 라 생각했다. 

 

삶엔 의미가 없다, 아니다 의미가 있다. 팽팽히 대척하는 이 오백 쪽 넘는 주장들 앞에서 내가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말장난 같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의미와 무의미가 제멋대로 뒤엉키는 삶 속에서 '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다만 그것만이 중요히 여겨지는 밤이었다. 제하에게 이젠 잊혀진 공룡들도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구 보니 떡볶이가 저녁이었던 오늘

 

 

아 , 드디어 끝

웃긴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떡볶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단 거!

입맛이 이렇게도 바뀔까? 학생 때는 떡볶이를 그렇게나 좋아하던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떡볶이와 마늘에 미쳐있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의 정체성을 완성했다

그러게 아직까지 그 식성을 유지해왔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 책만의 특수성은! 처음으로 온라인 상으로 완독한 책이어서 의미가 깊다

아날로그 인간인 내가 신문명에 눈을 뜨게 될 줄이야.

문장마다 일일히 포스트잇을 붙이지 않아도 되니 넘 편하다 맛을 들여버렸어. 떡볶인가

표지커버는 요조님의 작품인걸까? 떡볶이랑 상관없어서 더 좋고 궁금하다. 

그리고 예전에 친한 언니가 이디야에서 일할 적 카페에 요조님이 오셨었는데 팬이라는 사실을 카페 브금으로ㅋㅋㅋ수줍게 밝힘으로써 고백했었다. 그걸 요조님이 알아보시고 쪽지까지 주셨었단 일화도 생각나며 재밌었다. 그 작가님의 책을 이렇게 내 방 침대에서 다 읽어냈다니. 사랑스러워 이렇게 보면 너무나 가까이 있는 것 같애 모두들. 지구촌 사람들 다들 언젠가 한번 보자구요옷🌴

 

 

 

하 떡볶이 먹고 싶어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