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여름) 김신회

2021. 8. 5. 13:15카테고리 없음

 

 

초반에 기쿠지로의 여름 이야기가 나와서, 읽는 내내 틀어놓아 배경음악 삼았다. 바깥으로는 엄마의 솜씨 좋은 탈래 탁탁 털기와 고양이들의 교차되는 풍경을 보면서. 

 

식물을 기른다는 건 또 다른 방법으로 원동력을 얻는 일이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위로 향하는 식물을 볼 때마다 내 안에도 비슷한 새싹이 자라는 것 같다고 한 작가처럼. 그래 각자의 속도는 다 다르지, 괜히 나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은 것 처럼. 그저 아끼는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건강히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잘 견디고 있는거야. 

 

 

 

마치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이제껏 수많은 여름이 나를 키운 것처럼 너도 자라게 하겠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여름의 순간들과 함께 이만큼 자랐다. 여름이 끝나가면 어김없이 서운하다. 

 

여름이 가진 대책없이 낙관적인 에너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러이 나를 지켜봐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 어른스런 계절. 내가 되고픈 사람도 이런 여름 같은 사람이다. 

 

오랫동안 나의 여름어(語)는 '기대'였다. 

 

어쩌면 여름은 실수의 계절) 

 

초당옥수수의 계절은 짧다. 6월 초에서 7월 초까지가 피크다. 한 달 동안만 바짝 맛난 채소라니, 벚꽃만큼이나 애틋한 정서가 느껴진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여름엔 모두 맥주로 하나가 된다. 나와 내 친구들은 맥주 마시려고 운동을 가거나 맥주 마시려고 운동 갈 계획을 취소한다. 수입맥주 4캔에 만원, 이것저것 담을 수 있음에 다른 친구의 맥주 및 안주 취향도 알게 되고, 캔을 기울이며 우정도 도모하고, 이 얼마나 알콩달콩한 시스템이냐고요. 

 

겨울엔 패션이 좀 구려도 상관없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이미 구리기 때문이다. 

 

본격적 더위가 시작되기 전, 경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대릉원에서 파릇파릇한 능을 황홀히 바라보고, 저녁엔 동궁과 월지에 가서 구석구석 묻어있는 여름 냄새를 맡았다. 황리단길 담벼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찰보리빵에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는 참 여름스런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계절을 닮은 사람과 좋아하는 계절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여행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보려 했지만 여행은 힘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나는 울고 말았다. 슬픔은 대출금같은 것이다. 애써 모른 척, 괜찮은 척 해봐도 그 자리에 그 대 로 있다. 외면하거나 도망치면 이자는 불어난다. 그저 실컷 슬퍼하며 착실히 상환해 나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