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0. 14:23ㆍ카테고리 없음
앞으로 영화 감상문은 세 단계로 나누어 작성해보기로 했다.
1. 영화보자마자
2. 좀 지나서 생각날 때
3. 아주아주 많이 지나서 잔상만 남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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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뭔가 보고 싶어서 넷플릭스의 수많은 작품들을 뒤적이다 발견한 내사랑.
제목만 보면 그다지 매력 없는데 영화 설명을 읽자마자 재생을 누르고 있던 나.
난 이런거에 취약한가봐
한 여인이 있다. 못생기고 성치 않은 몸, 궁핍한 삶. 그러나 돈을 벌기위해 당도한 한 남자의 집에서 기적같은 삶을 그려간다. 훗날 화가로 명성을 떨친 그녀의 이름은 모드 루이스. 전 세계를 아릅답게 물들인 로맨스 실화.
마지막 문구 '로맨스 실화'는 여전히 맘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저 카피로 영화를 재생하게 했으니 대단해!
나의 소구점이라고 볼 수 있나? 성치 않은 몸으로 어떻게 삶을 이끌어갔는지가 궁금해서
그리고 둘이 어떤 삶을 그려나갔는지도 궁금해서.
보다가 너무 졸려서 14분 정도 보다 잤는데
다음날 일어나서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이고 기뻤다. 식사도 잊고 바로 봄
후반 30분 정도는 휴지 뭉탱이를 그냥 눈에 갖다댄채로 내내 울었다
왜일까.. 그녀의 삶과 성정이 너무 강인하고 그만큼 강인함이 애틋해서.
그간 그녀의 삶이 그녀를 얼마나 아프게했으면... 싶어서. 영화 속 모드는 '외유내강'이란 말 그 자체다.
삶은 그녀에게 정말 많은 것을 허락했지만 동시에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것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범한 걸음걸이, 아프지 않은 관절, 보통 체격을 지닐만큼의 건강.
하지만 개의치 않아. 그녀는 정말 '무언가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가족이란 사람들의 수지타산계산에도, 핍박에도 멸시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해 나갈 뿐이다.
좋아하는 클럽에도 다녀오며 취미 생활은 확실히, 식료품 점을 갈 때는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곤 게시판의 종이를 뜯어오는 앙큼한 구석도 있다. 자신을 참 잘 지키는 사람이다.
또 어디에도 쉽게 종속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쓸데없는 자존심도 부릴 필요를 못느낀다.
클럽에 다녀온 것을 호통치는 숙모에겐 '그래서 말씀 안드리려 했던 거에요'하고, 거듭 내가 주인이고 내가 결정한다며 서열과 지위를 확인시키려는 에버렛에겐 '당신이 사장이에요. 명심할게요.'라며 앵무새처럼 따라하지.
나를 돌봐주고 내게 숙식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쫄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다. 아무리 숙모더라도, 내 일 찾았으면 바로 떠나버리는 거다. 나의 삶은 내 것이기에. 지금 있을 곳이 여기 뿐이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나가는거다.
ㅋㅋㅋ한편으론 여기밖에 없으면 또 들어와서 납작 엎드려 모른채 해야지.(맨 처음 에버렛 집에서 쫓겨났다 들어왔을 때) 그럴만큼의 번죽과 깡도 있다니 정말 대단해. 그 에너지야 말로 이 사람의 매력과 힘 그 자체다. 자신의 내면을 가장 지지하며 믿어주고, 목소리를 들어주고. 혼자 있고 싶으면 있게 해주고, 필요 이상으로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게하며
스스로 완전한 일치를 이뤘을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내면의 에너지를 발산하니까. 그런 그녀가 아무리 깡마르고 볼품없다한들, 에버렛이 어떻게 찾으러 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런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친구의 집에 머무르는 그녀를 데리러가서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 남자 옆에 아무리 이쁘고 늘씬한, 교태가 흘러넘치는 여자가 있다해도 옆에 모드가 있으면 그의 신경은 온통 그녀뿐일거야. 이미 그는 그녀의 안위를 걱정할만큼 마음을 뺏겼으니까. 서로의 남은 삶을 돌봐주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러고나면 외형은 어떻든 아무 상관 없어질 것이다. 이제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서로의 안전과 건강, 행복이 되는거지. 남은 여생의 하루라도 온전히, 평화롭게 보냈음 할거고.
당신이랑 하느니 차라리 나무판때기랑 하는 게 낫지
라고 말했던 남자를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건, 나무보다 단단하고 올곧은 그녀의 심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 연연하지 않았다. 가진 게 없어도.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 하나 없어도. 볼품 없어도.
그냥 .. 자신에게 밀려오는 삶의 바다에서 착실하게 농담거리를 찾고. 우스운 말들로 공백을 채우고. 사소한 풀꽃 하나 어여쁘게 봐주고. 대화의 끝에는 꼭 미소를 덧붙이고. 이런 식으로 삶을 대하고 삶을 맞았다. 시련을 안겨주는 순간에도 고통을 안겨주는 순간에도. '사랑'만을 꼬옥 손에 쥐고
난 사랑받았어. 난 받은게 많아. 바라는 건 아무것도 필요없어. 난 사랑받았어. 만을 되뇌이는 사람.
자신을 스스로 행복하게 하고 자신의 안을 가꿨던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에도 초연하게 농담을 던질 수 있던 사람.
결과적으로 '그녀는 그녀를 가졌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물질적으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그녀의 삶에서 그녀는 오로지 '그녀' 자신을 갖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착실히 고민하고 노력했던 것이다.
아 아름다워